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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기 전 베르찌오가는 이곳을 ‘부리끼오까(Buriquioca)’라 부르던 인디언들이 거주한 곳이다. 뚜삐 언어로 부리끼 ‘Buriqui’는 커다란 원숭이, 오까(oca)는 집을 뜻한다. 오래 전 세뇨리냐(Senhorinha) 언덕에 커다란 원숭이들이 살았던 것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베르찌오가는 커다란 원숭이들의 집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1531년 산또 아마로(Santo Amaro) 섬 해협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브라질 해안 총독 마르찜 아폰소 데 소우자(Martim Afonso de Souza)가 도착하며 베르찌오가 촌락이 창설되었다.
이 후로 베르찌오가는 적군의 침투에 대항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547년 상 찌아고 (São Tiago) 또는 성조엉 (São João) 요새가 처음으로 건축되며 베르찌오가는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적의 공격이 계속되며 해협의 반대편에 성펠리삐(São Felipe) 또는 상 루이스(São Luis) 요새를 새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에스따씨오 다 사(Estácio de Sá)의 함대가 히오데자네이로를 점령하려던 프랑스 침략자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출발했다.
1991년 5월 19일 베르찌오가 주민들은 산또스 도시와 분할 위해 국민투표를 했다.
1991년 12월 31일 상파울로 지사 루이스 안또니오 츨레우리 필료(Dr. Luiz Antonio Fleury Filho)는 법 제 7664번 법령을 발표로 베르찌오가 시 창설을 공식화 했다.
베르찌오가는 州에서 가장 많은 녹색지대를 갖고 있으며 세하 도 마르(Serra do Mar) 주립공원은 베르찌오가 市 총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외에도 33 km이상의 해변, 광범한 망고나무 구역, 강, 폭포, 풍성한 동물, 식물이 있는 곳이다. 오래 전 요새였던 히베이라 데 상 로우렌쏘(Riviera de São Lourenço)는 환경보호와 개발이 일치할 수 있는 최첨단 관광센터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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